『나의 종교』 2장
『그래서 제가 떨어진 오류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입술로 예수님께 고백하였지만 마음은 여전에 멀리 있었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말씀은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행할 규칙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모든 신비의 열쇠이며 자물쇠에 넣어야 할 열쇠입니다. 그것을 행하기 불가능한 명령으로 여기면 전체 교리의 가치가 사라집니다. 우리가 근본적 명제를 버렸는데 왜 교리가 실천 불가능해 보이지 않을까요? 불신자들이 그것을 완전히 어리석게 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악인에 대적하지 마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기독교인이라 한다면 예수님의 교리를 실천하는 힘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유대인 랍비와 함께 마태복음 5장을 읽었습니다. 거의 모든 구절에서 그는 「이것은 성경에 있다」 「이것은 탈무드에 있다」라고 말하며 성서와 탈무드에 있는 산상 수훈의 말씀과 아주 흡사한 문장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악인에 대적하지 말라」는 구절에서 랍비는 「이것은 탈무드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웃으며 제게 물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이 계명을 따릅니까? 다른 뺨을 내미나요?」 저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는데 특히 그 시기에 기독교인은 다른 뺨을 대는 것과 거리가 멀었고 유대인의 양쪽 뺨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성서나 탈무드에도 비슷한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길 「아니요」 「그런 것은 없어요. 하지만 기독교인은 이 원칙을 지킵니까?」
아무도 지키지 않고 기독교인 스스로가 실행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계율이 기독교 교리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원칙의 어리석음과 무효화를 단순히 인정하는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저는 랍비에게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제 교리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니, 제가 처했던 이상하고 모순된 입장을 분명히 알겠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교리의 신성함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그 교리와 완전히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저에게 남은 것은 그 교리를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말로는 예수님 교리의 신성함을 인정했지만 행동으로는 전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증명해왔으며 사방에서 제 삶을 방해하는 반기독교적 관습을 인정하고 존중했지요. 구약성서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유대인들이 거짓 신을 믿고 여호와를 부정했기에 불행이 그들에게 닥쳤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람들이 그들의 다른 배신 외에도 자신들의 구원자로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를 대신해 사람을 선택한 것을 비난합니다. 「돌아서서 형체 없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사무엘이 말하길(상 12장 21절) 「돌아서서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것들은 유익하지도 구원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진심으로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그러니 저도 마찬가지로 헛된 것과 공허한 우상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진실이 숨었습니다. 진리로 인도하는 길의 반대편에서 헛된 것의 우상인 토후가 빛을 끊으며 제 앞에 솟아났고 저는 그것을 물리칠 힘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 시간쯤 저는 모스크바에서 보로비츠키 문을 향해 걸을 때 거기엔 더러운 천을 머리에 감은 늙은 절름발이 거지가 있었죠. 제가 돈을 주려고 지갑을 꺼낸 순간에 한 젊은 군인이 고개를 들고 얼굴을 붉히며 빠른 속도로 군대의 위엄이 깃든 국가 휘장을 달고 크렘린 궁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거지는 병사를 알아차리고 두려움에 몸을 일으켜 알렉산더 가든을 향해 온 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병사는 도망자를 잡으려 헛수고를 한 끝에 걸음을 멈추고 규정에 반하여 출입구 아래에 자리잡은 가엾은 사람에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병사를 기다리다가 그가 다가왔을 때 그에게 읽을 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네, 왜 물어보죠?」 「신약성서를 읽어 보셨나요?」 「네」 「당신은 원수가 굶주린다면 먹을 것을 주라는 말을 기억합니까?」 저는 그 구절을 되풀이했고 병사는 그걸 기억했으며 제 말을 끝까지 들었지요. 그가 불편해 보였어요. 행인 두 사람이 멈춰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병사는 사람들이 머물지 못하도록 금지된 곳에서 사람을 쫓아내는 임무를 다한 것에 비난을 받는 것을 고민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잘못했다 생각하고 변명을 찾았습니다. 갑자기 그의 눈이 밝아지고 그는 마치 떠날 듯이 어깨 너머로 저를 보았습니다. 「군 규정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그가 물었습니다. 저는 말하길 「아니오」 「그렇다면, 당신은 제게 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 번 당당하게 자기 자리로 물러갔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 중에 그는 확고한 논리로 사회 관계에서 언제나 직면하고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부르는 모든 사람 앞에 끊임없이 생기는 질문에 답해준 유일한 사람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