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대부분의 기존 종교들은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스승이 떠난 지 오래돼서 신과의 연결이 끊어졌는데 시크교 제자들이 『난 신과 연결됐다』고 말했던 거죠. 혹은 『우리 스승님에게 오면 신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라고 했거나요. 그러니 당연히 참을 수가 없었겠죠.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종교 창시자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됐고 누구도 신과의 직접적인 연결방법을 전수해주지 않아서 그들은 그저 옛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외우기만 하면서 그것이 종교라고 부르짖었던 거예요.
이건 당시 시크교를 믿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 굳건한 신심을 가졌던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알다시피, 많은 시크교 스승들이 당시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물론 오해 때문이었죠. 혹은 기성 종파의 시기심 때문이거나요. 그들이 시크교 스승들과 제자들을 심하게 박해해서 일부 제자들은 무기를 들고 가족이나 지인들을 보호해야 했죠. 최근 이슬람 종파와 비슷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 그들에게 일어난 거죠. 자, 이건 당시 시크교와 스승을 믿었던 소년에 관한 이야기예요.
『인도의 파로크샤 왕 시대에, 왕은 펀자브의 시크교도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말했다시피, 왕이 어떤 종파에 속해 있는데 누가 책에 나오지 않는 다른 내용을 설파하면 왕은 자신에게 「이교도」를 타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신의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들 말이에요. 늘 있었던 일이고 아주 슬픈 일이었죠. 모든 이가 스스로 신을 믿는다고 여기지만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였으니까요. 그런 시대를 말하는 거예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서로 싸웠던 사람들은 종종 같은 신 때문에 싸웠어요. 그러니까 같은 사과파이 때문에요. 한 쪽은 파이를 구워서 먹어 봤는데 다른 쪽은 온종일 조리법만 외우고선 사과파이를 맛볼 수 있는 사람과 싸우는 셈인 거죠. 자신은 파이를 한번도 맛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 겁니다. 좋아요.
그래서 『파로크샤 왕은 펀자브의 시크교도와 싸우면서 자기 왕국에서 그들 모두를 없애고 싶어했습니다』 믿어지나요? 그는 정말 그들 모두를 없애고 싶어했어요. 『심지어는 군대와 모든 이들에게 시크교 신자를 붙잡으면 즉시 목을 베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오,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보세요. 종교라는 이름으로요. 물론 왕에겐 권력이 있었죠. 그 당시의 왕은 원하면 언제든지 사람들의 머리를 벨 수 있었어요. 그러니 왕이 깨닫지 못하고 광신도 같았다면 당연히 와, 와, 와! 당시 시크교 스승들과 그들의 제자들이 살아남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이 갈 겁니다. 하지만 믿음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아무리 힘든 여건에서도 사람들은 늘 믿음을 갖고 시크교 스승이나 주 예수, 선지자 무함마드,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부처님 등을 따랐죠. 그 무엇도 그들을 막을 수 없죠. 아무것도요.
『그렇게 왕은 시크교도의 머리를 가져오는 이에게 두당 2백 루피를 포상하겠다고 선포했죠』 오, 끔찍해요! 중세의 마녀사냥과 흡사했어요. 아주 위험한 거였죠. 자기 마음대로 그냥 아무 목이나 베어서 왕에게 가져가 시크교도의 머리라고 하면 그만이니까요. 무슨 수로 증명하겠어요? 물론 당시 시크교도들은 징표가 있었습니다. 팔찌를 하고 빗을 소지하고 터번을 하고 짧은 바지를 입었어요. 또 뭐가 있었는데 잊어버렸어요. 다섯 가지였어요. (칼입니다) 칼도 있었나요? (네) 또 뭐가 있었죠? 네. 그게 다였죠? 팔찌, 터번, 빗… (짧은 바지요) 짧은 바지와 칼이요.
아마도 칼일 거예요. 그 당시엔 어떻게든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으니까요. 누굴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나도 무기가 있으니 날 죽이려 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라』 혹은 『날 해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라』 하는 식인 겁니다. 자기방어를 위한 거죠. 선지자 무함마드,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그의 시대도 같았죠. 선지자는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결코 제자들에게 나가서 누군가와 싸우라고 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자녀와 친척을 보호해야 했기에 적어도 적들에게 보여줄 만한 뭔가가 있어야 했죠. 『나도 있으니 우리 중 하나는 다치게 되어 있다』 『내가 다칠 수도 있지만 너도 다칠 수 있으니 우리를 내버려둬라』 하는 식으로요. 그들은 그러길 바랐던 거죠. 그러길 바랐던 거예요.
자 이제, 『불행히도 펀자브에 있던 군대는 어느 날 시크교도 약 5백 명을 붙잡았는데…』 오, 맙소사! 그 정도면 여기 있는 인원인데 여러분 모두가 머리가 잘린다고 상상해 보세요. 끔찍하죠! 『…그들은 숲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숲에 들어가 숨었는데 왕의 군대가 들어가서 찾아낸 겁니다. 이런 게 바로 광신주의의 끔찍한 면모예요. 그들이 뭔가를 잘못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니잖아요. 시크교는 지금의 다른 모든 종교와 똑같이 정의와 채식주의와 신과의 연결을 가르쳤어요. 하지만 그게 문제였던 거죠.
그 당시 대부분의 기존 종교들은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스승이 떠난 지 오래돼서 신과의 연결이 끊어졌는데 시크교 제자들이 『난 신과 연결됐다』고 말했던 거죠. 혹은 『우리 스승님에게 오면 신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라고 했거나요. 그러니 당연히 참을 수가 없었겠죠.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종교 창시자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됐고 누구도 신과의 직접적인 연결방법을 전수해주지 않아서 그들은 그저 옛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외우기만 하면서 그것이 종교라고 부르짖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걸 믿지 않거나 똑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무신론자라고 하거나 온갖 구실이나 딱지를 붙여서 제거 대상으로 만들었죠. 그렇게까지요. 맙소사!
그들은 숲에 숨어 있다가 『모두 델리로 끌려갔습니다』 지금도 인도의 수도이죠. 『그들을 왕 앞에 데려가자, 왕은 즉시 목을 베라고 명령했습니다』 맙소사, 무슨 왕이 그런가요! 믿어지지가 않네요. 이해가 안 돼요.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 걸 믿어야 하는 건 아니죠. 그들과는 접촉도 안 하고 자신도 그들이 믿는 걸 믿지 않으며 그들을 보호해주지도 않고 아무 특권도 주지 않으면서 그저 그들이 다른 걸 믿는다는 이유로 목을 베다니 정말 너무합니다. (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인류 역사상 그런 일들이 있었죠.
『포로들 중에는 어린 시크교 소년이 있었어요. 그는 그의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아이였죠』 그들에게 집안의 핏줄을 잇는 남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여러분도 알 거예요. 그는 집안의 독자였어요. 『그의 어머니는 포로들을 따라 델리까지 와서…』 그녀는 체포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 소년과 모든 이들이 잡혔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아니었죠. 『…고관 부인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설득해서 왕께 아이의 목숨을 살려주도록 말을 잘 해달라고 애원했어요』 이 소년의 어머니는 고관 부인까지 알고 있었네요. 고관이라면 아마 국무총리 같은 사람을 말할 거예요.
『그러자 왕이 말했어요. 「소년이 자신이 시크교도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풀어주겠다」』 물론 그럼 왕이 풀어줄 명분이 되겠죠. 아니면 왕은 소년이 시크교도가 되지 않길 바랐던 것이죠. 『특별 호위대가 소년을 왕 앞에 데려오자 왕이 아주 거만한 목소리로 명령했습니다. 「소년아, 살고 싶다면 네가 시크교도가 아니라고 선언하거라」 허나 이 말을 듣고 소년은 목청껏 소리를 질렀어요. 「나는 시크교도이다!」 그리곤 사형 집행인에게 거부할 수 없는 확고하고 결연한 태도로 말했어요. 「제 목을 단칼에 베어 주십시오. 더는 어머니가 제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괴로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는 빨리 끝내길 원했어요. 어쨌든 자기가 죽고 나면 적어도 어머니가 아들이 죽을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고통받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것도 괴로운 일이죠. 자기 아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살지 죽을지도 모르면서 계속 기다리는 상황은요. 어머니로선 견디기 힘든 일이죠. 그래서 사형 집행인에게 단칼에 목을 베서 한번에 끝내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이것이 시크교도가』 「시크」는 제자를 뜻해요. 『사트구루에게 가져야 하는 믿음입니다』 「사트구루」란 참 스승, 깨달은 스승을 뜻하죠. 『그러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믿음과 스승에 대한 헌신을 지킬 것입니다』 그런 거예요.
또한 구루 나낙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정한 제자는 희망도 두려움도 없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제자이다』 네, 말은 쉽지만 생사가 걸린 상황이 되면 때로는 너무나 큰 충격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주 예수가 로마인들에게 잡혔을 때, 그의 한 제자도 그를 세 번이나 부인했잖아요. 왜 부인했는지 모르겠어요. 인간의 속성 때문이겠죠. 갑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소멸될 상황에 직면했으니까요. 분별력이 있었을 (성) 베드로 같은 제자조차도요.
어쩌면 그가 부인했던 건 예수에게 불리한 증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라요. 아마도 목숨을 잃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 사람을 안다』고 하면 로마인들에게 스승을 가리키며 『그가 당신들이 잡고 싶어하는 스승이요』라는 증언을 해야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그를 모른다』고 작은 거짓말을 하기로 한 거죠. 나중에 예수가 스승이란 사실까지 부인하거나 스승의 목숨을 위험에 빠트리는 대신에요. (성) 베드로가 자기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내 생각에 그는 스승이 목숨을 잃을까 걱정되어 그런 상황에서 차라리 작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을 해서 스승을 살리려 했던 것 같아요. 진실을 말해 스승을 해치는 대신에요. 그랬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요? (저희도요) 난 성 베드로 같은 제자가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은요? (저희도요)
좋아요. 이게 다예요. 이것에 대한 질문 있나요? 없어요? (없습니다) 네. 그럼 좋아요. 이제 명상하세요. 여기 비건 사탕과 과자가 많으니까 원하면 나중에 좀 가져가세요. 내가 이미 축복했어요. 좋아요. 명상하세요. 난 아래층에 내려가서 명상하겠어요. 여러분은 이미 날 봤으니 내려가서 그들을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