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월이 소개한 『페타르 다노프 (베인사 도너)의 예언』에서 『신기원』(1944)을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신기원 (1944)
『모든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리듬으로 시작하고 오늘, 삶에 새로운 리듬이 찾아옵니다. 신성은 모든 곳으로 그 길을 뻗어 나갑니다. 지금 다가오는 파도는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광물, 식물, 동물까지 고양할 것입니다. 이 파도도 고양할 수 없는 자들은 미래를 위해 남겨질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자연에는 현상이 반복되지 않기에, 이와 같은 파도는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미래까지 기다린다면 그때는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겁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문화가 세상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를 신성한 사랑, 지혜, 진리의 문화로 부르며 사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옛 삶은 고통이지만, 새로운 삶은 기쁨입니다. 뿌리는 옛 삶이고 가지는 새로운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의 결핍 끝자락에 있으며 신성하고 조건 없는 사랑의 시작에 있습니다. 누가 인간을 깨울까요? 인간을 보살피는 분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깨웁니다. 이는 그녀가 자기 아기를 보살피는 걸 보여줍니다. 신은 인간의 파수꾼이며, 이는 그분이 인간을 돌보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현시대에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시대를 위해 남겨질 것입니다. 신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하는데 문제는 분명합니다. 나는 과일나무에 가서 익은 열매를 따고, 나머지 열매는 기다릴 것입니다. 그 열매가 익으면 그것도 딸 것이고 상한 열매는 거름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나중에 그 열매들도 아름다운 열매가 됩니다. 당신이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가까워질 때까지 나를 찾아라」라고 하는데: 내가 당신 곁에 다가올 때까지 유리한 조건을 활용하라는 뜻이죠. 만약 사람들이 미래가 가져올 것에 놀라게 된다면, 그 놀라움은 다가올 선을 활용할 기회를 빼앗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조건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영혼에 평화를 가져오는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무지는 사람을 걱정으로 채웁니다. 오늘 온 세상에 새로운 것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 주기가 형성되며 그 주기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자신 앞에 놓인 큰 기회를 발견할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유리한 기회를 놓칠 것입니다. 신성이 이 세상에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장 위험한 때로, 잠이 들어 바깥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신성의 기차는 정시에 오고 1초만 늦어도 놓칠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의식과 마음, 정신이 잠자지 않아야 합니다. 수천, 수백만 년 동안 지구에서 살아오며 많은 고통을 겪어온 -그 사람이 과연 이 순간을 놓치고, 그 기차를 놓쳐 신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를 원하겠습니까? 신께서 오셨을 때 당신이 깨어있다면, 당신은 씨앗처럼 자라나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하루는 두 부분이 있어 하나는 해가 뜨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해가 지는 시간입니다. 정오까지 상승의 때이고 오후는 하강의 때입니다. 이 시대에 관한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시대는 하강 중이며,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은 물러가고 봄이 제때 찾아오듯이, 선도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올 것입니다. 봄이 오면 모든 것이 꽃을 피웁니다. 신성의 도래와 함께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빛나는 시대가 다가오며 형제애의 이념이 실현될 것입니다. 이 신성의 봄은 한꺼번에 오지 않고 서서히 옵니다. 자신도 모르게 변할 것이며,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날 그들은 깨어나 마치 고치로 몸을 감싸는 애벌레와 비슷한 새로운 단계에 있음을 깨닫게 되며 고치 안으로 들어간 뒤에는 더는 잎을 먹을 수 없는 나비로 변모할 것입니다. 지금 다가오는 것을 「인간 내면에서 신성한 근원의 현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이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모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직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들은 공중에서 사는 법을 물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비가 되면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애벌레는 배울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삶은 더 활기차며, 몇 년 전만 해도 아기들은 생후 3주가 지나야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태어나자마자 눈을 뜹니다. 이는 모든 나라, 모든 곳에서 같으며 겸손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바로잡을 겁니다. 겸손한 이들은 누굴까요? 한때 두 사람이 법정에 섰고 한 사람의 아들이 와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법정에 서 있을 필요는 없어요. 그 일을 잊고 용서해요」 이 아들은 소극적인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그가 재판을 멈추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