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시공의 개념에 속는 거죠. 그런 거예요. 알겠어요? (네) 사실 공간도 하나예요. 공간을 나눌 순 없죠. 우린 같은 공간에 있어요. 그러니 뭐가 문제죠? 그리고 시간도 역시 일종의 환상이죠. 자고 있을 땐 시간을 모르잖아요. (네) 행복할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고요. (네) 불행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만 가죠. 왜 그럴까요? 다 관념, 선입견이라서 그런 거죠. 다 관념이에요. 다 환상이에요. […]
이제 이해했나요? 마음은 교활합니다. 마음은 모든 걸 탓하죠. 자기 자신만 빼고요. 독선적인 사람은 말합니다. 『내가 7일 만에 부처가 되지 못한 것은 당신 때문이에요. 전엔 7시간 만에 부처가 되곤 했어요!』 그 모든 걸 알죠. (네) 따라서 여러분은 이런 불만을 듣고 나면 그저 귀를 털고 씻어내세요. 감염될 수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했나요? (네) 소화불량이나 변비는 없나요? 없죠. (없습니다) 좋아요. 아주 간단해요. 아주아주 간단하죠. 여러분은 성장했어요. 특히 이미 몇 번의 선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 사람이 성장하려고 하지 않고 아기처럼 항상 내가 목욕시켜 주기를 바란다면 난 그런 것에 관심 없어요. 여러분은 스스로 성장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 대신 성장할 순 없죠. 불가능해요. 안 그래요? (맞습니다)
내 엉터리 영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 이건 막힌 걸 뚫어서 편안하게 해주는 거예요. (네) 설법은 막혀서 불통이 되면 안 됩니다. 빈센트가 늘 말했듯이요. 여러분은 나한테서 많이 배우지만 가르치는 방식이 재미있고 편안하죠. 그렇게 해도 내가 하는 말을 여러분은 알고 이해하죠. 마음에 깊이 새겨질 거예요. (맞습니다) 또 많은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질 테고요. 일종의 편견에서도요. 알고 있죠? (네) 그래요. 자유로워지도록 배우는 건 아주 재미있고 편안해요. 흐름에 따라가지 않으면 아주 어렵죠. 어딘가에 걸려 꼼짝 못하는 건 본인이 선택한 거예요. 허나 나도 함께 거기 있길 기대하진 말아요. 알겠어요? (네) 그래요.
여러분은 여기에 진지하게 왔어요. 깨달음을 얻으려고요. 성불을 하려고요. 허나 성불은 여러분 옷이죠. 본인만 입어요. 난 됐어요. 알겠어요? (네) 진지하길 원해요? 좋아요. 여러분은 원하는 어떤 옷도 입을 수 있어요. 스스로 편안할 수 있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다면요. 그럼 괜찮아요. 하지만 옆 사람들도 그러길 바라진 마세요. 물론 제안은 할 수 있죠. 혹은 본인은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해도 되지만 타인에게 기대하고 비판하진 말아요.
물론 교사는, 학생과 같아선 안 됩니다. 교사가 집에 가서 늦은 밤까지 공부하고 숙제를 하던가요? (아뇨) (아닙니다) 학생처럼 문제 풀고요? 물론 안 그러죠. 그렇게 하면 교사라 할 수 있나요? 이해했어요? (네) 교사라면 교사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고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거죠. 그렇죠? (네) 그러니 교사는 가서 춤추고 커피 마시고 연애하고 차를 몰고 다니고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죠. 알겠어요? (네) 가르쳐야 하는 건 이미 다 아니까요. 다른 분야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과목은 잘 알고 있고 그러면 된 거죠. 교사의 유일한 요건이죠. 자기 과목을 잘 아는 거요. 다른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죠. 그의 가르침 덕에 학생들에게 성과가 있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하여튼, 마음이 편협하고 너무 고지식하면 자신에게 해가 될 뿐이니 마음을 여세요. 허나 조심하세요. 아무것에나 열면 안 돼요. 하지만 마음을 열고 온전한 내적 분별력으로 판단하면 잘못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미 여러 번 말했어요. 이번만이 아니죠. 난 뭐든지 해도 돼요. 허나 멈출 때를 알고 있고 어디에도 빠지지 않아요. 여러분은 그러지 못하죠. 매번 빠지고 마니까요. 그렇죠? (네) 그래서, 커피에 중독되고, 차에 중독되고, 이 세상 어떤 것에든 중독됩니다. 난 마시지만 중독 안 돼요. 알겠어요? (네) 오늘은 커피를 마셨어요. 음식을 해주는 어울락(베트남) 여인이 커피를 타줬고 그래서 마셨어요. 하지만 그 전후로 그걸 마시고 싶어하진 않죠. 매일 커피를 마신다 해도 바로 끊을 수 있어요. 매일 차도 마실 수 있어요. 필요하다면요. 가령 선행사 중에는 차를 마시죠. 매일 마시는 걸 볼 겁니다. 허나 다른 땐 차 마시는 걸 보지 못할 거예요. 이를테면 지난 두 달간 난 안거를 했어요. 난 직접… 글쎄요. 그 기간 얘긴 안 할게요. 이번 달에는 한두 번만 차를 끓였어요. 이유는 그가 원해서죠. 그래요. 그게 이유예요. 그래서죠. 알겠어요? (네) 좋아요. 차를 끓여서 우린 함께 마셨어요. 서너 사람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차를 마셨어요; 난 한 잔 마셨고요.
허나 이 선행사에선, 매일, 그 인도 여인에게 인도 비건 차이를 끓여달라고 했어요. 내가 중독된 듯 보이겠죠. 매일 내게 인도 차를 가져오는데 여러분이 그러고 싶어하기 때문이죠. 내가 지나가면 그녀는 묻죠. 『인도 비건 차를 갖다 드릴까요?』 그럼 난 좋다고 하죠. 그녀는 매일 차를 끓이고 나는 매일 그걸 마셔요. 난 순종하는 스승이에요. 허나 여러분이 가고 나면 난 더 이상 마시지 않죠. 혹은 다시는 마시지 않아요. 마실 수 있지만 안 마셔요. 다른 점을 알겠어요? (네) 그러니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건 나한테서 배우지 말아요.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하는 거예요. 차를 마시는 건 그녀가 내게 차 끓여주는 걸 좋아해서죠. 내게 인도 비건 음식을 해주는 걸 좋아하고요. 허나 지금은 어울락(베트남)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기에 난 그걸 먹습니다. 어울락(베트남) 사람이 음식을 하게 하고 인도 사람이 차를 끓이게 하니 둘 다 행복해합니다. 서로 악수하고 주방에서 일해요.
이따금, 난 차나 비건 차파티 만드는 걸 알려주며 수행의 여정에서 삶을 더 밝게 해주는 거죠. 힘든 길에 꽃을 갖다 놓아 부담을 덜어주고 성불에 대한 너무 강한 열망에서 오는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는 거죠. 긴장을 풀면 될 겁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매일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무리하지 않게 배웁니다. 무리를 하면 못 배워요. 막히게 되죠. 이렇게 눈 옆에 뭔가를 갖다 놓으면 그게 뭔지 안 보이죠. 너무 가까워서요. 이해해요? 초점에서 벗어나도 안 좋고 눈에 너무 가까워도 뿌옇게 보이죠. 시야가 흐려져요. 그러니 알맞게 중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래하고 차와 차파티를 먹고 농담을 하고 그러는 거예요. 알겠어요? (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떠밀며 재촉한다고 아이가 뛸 순 없잖아요. 계속 손을 잡아주며 박수를 쳐줘야 하죠. 『옳지, 잘하네, 그렇지!』 맞죠? 아기니까요. 뛸 수 있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뛰세요. 옆의 아이가 뛰기를 바라거나 자신이 스스로 하듯이 아이 엄마가 아이를 재촉하길 바라지 말고요. 알겠어요? 아이마다 다르니까요. 난 여러분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아요. 스승에 대해 충분한 신심이 없을 때 그런 문제가 있죠. 아니면 에고가 너무 크거나 습관에 물든 두뇌의 소리에 너무 귀를 기울이는 거죠. 외적 지위에서 오는 고정 관념, 사업적 성공이나 사회적 명성에서 오는 고정 관념에 휘둘리는 거예요. 그건 다 습관적인 것이니 통제할 줄 알아야 해요. 안 그럼 통제당할 겁니다. 여러분의 삶과 깨달음의 과정이 통제당할 거예요. 알겠어요? (네)
여러분이 날 존경하지 않거나 믿지 않아도 내게 해가 되진 않아요. 결코 날 해할 순 없어요. 여러분이 의사를 믿지 않아도 그 사람이 의사인 건 변함이 없죠. 그가 수년간 배운 지식을 여러분이 앗아갈 순 없죠. 알겠어요? (네) 그러니 삶에서 가장 큰 장애는 자신의 무지예요. 자신이 이룬 성과나 지위, 지식 쓰레기에 너무 자만하는 것, 그것도 무지에 속해요. 무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에요. 깨달으면 보는 방식이 달라져요. 그러니 『무지』란 말로 집약됩니다. 자신의 정신 건강을 점검하도록 해요. 식습관과 사고방식, 생각하고 반응하는 방식을 살펴보세요. 극단적이지 않도록요. 지나친 정신 활동, 지나친 지적 활동도 역시 자신을 지치게 해요. 그럼 깨달음으로 가는 에너지가 부족해지죠. 그런 거예요.
이제, 여러분은 저 언덕으로 천천히 이동해야 할 겁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여러분의 스승을 마음에 품고 가세요. 우린 늘 함께 있어요. 속지 말아요. 여러분은 속고 싶어하죠.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일부러 이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때때로 소소한 환상을 즐기는 걸 좋아하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이따금 나를 보고 싶어하는 거예요. 근사한 환상은 괜찮죠. 사실 우린 늘 함께해요.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이 사람이 아니니까요. 각 사람은 세세생생 또는 현생에서 모아온 습관과 관념일 뿐이에요. 우린 그 사람이 아니고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우린 지혜이며 사랑이죠. 이런 건 우주 전체에 퍼져 있어요. 어떻게 피부 껍질로 그런 게 분리되겠어요? 알겠어요? (네, 스승님) (네) 좋아요. 쉬어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집에 잘 가고, 우리는 늘 함께한다는 걸 명심해요. (사랑합니다, 스승님)
단지 시공의 개념에 속는 거죠. 그런 거예요. 알겠어요? (네) 사실 공간도 하나예요. 공간을 나눌 순 없죠. 우린 같은 공간에 있어요. 그러니 뭐가 문제죠? 그리고 시간도 역시 일종의 환상이죠. 자고 있을 땐 시간을 모르잖아요. (네) 행복할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고요. (네) 불행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만 가죠. 왜 그럴까요? 다 관념, 선입견이라서 그런 거죠. 다 관념이에요. 다 환상이에요. (네) 이제 알겠죠? (네) 그러니 울지 말아요. 원하면 울어도 되지만 제대로 이해해야 해요. (네) 여러분이 울고 웃고 내가 보고 싶다고,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좋지만 내면의 깊은 『투쓰(치아)』 (진리)를 이해해야 해요. 알겠어요? 내면의 『치아』를 찾아요.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스승님)
여러분은 사랑이에요. 여러분이 바로 스스로 찾는 그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그 스승이고요. 알겠어요? 이제 미소를 짓는군요. 아주 좋아요.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이해하는 거죠? (네) 이해하게 될 거예요. 사고가 아닌 직관으로요. (정말 감사합니다) 누가 남나요? 누구죠? 누가 남게 되나요? 이쪽 뒤에요? 어디서 왔죠? 누군지 모르겠군요. 이 두 사람인가요? 뒤에도요. 안 보이네요. 또 누구 없나요? 누가 남죠? 가나요? (네, 내일 갑니다) 그렇군요. 잘 가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안녕히 가세요. 스승님) (안녕히 가세요) (사랑해요) 잘 가요! (편히 쉬세요, 스승님. 편안한 밤 되세요. 안녕히 가세요,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