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착해 빠진』 어리석은 방식으로 약하고 순종적인 남편이 된다고 해서 가정이 평화로울 거라 생각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가정을 평화롭게 하는 방법이 아녜요. 오히려 더 엉망으로 만들죠. 아내가 당신을 무시하고 점점 더 당신 위에 군림할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요. 그러면 모든 게 걷잡을 수 없이 커지죠. 먼저 가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사회에서 더 나은 위치에 설 수 있어요. 평화롭게 살라는 거지 비겁하게 살라는 게 아니죠. 잘 알아야 해요. 비겁한 것과 평화를 사랑해서 다정한 것과는 다르죠. 사랑하되 단호해야 해요. 가령 딸을 사랑하지만 단 걸 너무 많이 먹으면 언제 그만 먹으라고 해야 할지 알아야 하죠. 딸을 사랑한다고 딸이 원하는 걸 다 주면 오히려 독이 되니까요. 딸을 사랑한다고 자기가 먹듯이 딸에게도 커피나 차를 많이 먹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를 딸에게도 줄 건가요? 안 되죠. 이해하겠어요? (네)
자신의 용기와 내면에서 나오는 힘으로 일어나 맞서고 가족을 지켜야 해요. 남자로서 용감해야만 하죠. 여자는 남자를 더 강하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보호자로 여기고 의지하기 때문이죠. 하니 그 반대 모습을 보이면 여자가 어떻게 생각할까요? 먼저, 상실감과 무력한 기분이 들겠죠. 불안할 테고요. 자기 남자가 약하니까요. 그래서 부담과 두려움을 느낄 거예요. 자신이 나서서 가족 전부를 돌봐야 하니까요. 수염 난 큰 『아기』도 포함해서요. 여자에게 그건 정말 큰 부담이에요. 여자가 찾는 남자는 자신을 지켜주고 의지할 만큼 강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아이들을 키우고 적정한 생활비 등을 버는 걱정과 슬픔, 부담감을 같이 나눌 정도는 돼야 하죠. 그런데 이젠 가족 중에 그렇게 강한 사람은 그녀 한 사람이죠.
게다가 남편도 아기처럼 보살펴줘야 하고요.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될 모든 문제를 함께 나눌 사람이어야 하는데요. 그래서 여자가 악녀가 되고 매서워지는 거죠. 실망스럽기 때문이죠. 상처 입었고 불안하고 미래가 염려되니까요.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되지?」 하는 거죠. 믿고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가 없잖아요. 걱정도 많고 곤란한 일도 많은데 남편이 약하니 부담을 나눌 수가 없죠. 남자는 늘 여자 말만 듣고 여자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모든 게 그런 식이니까요. 그러니 아내는 까탈스러워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자신을 잘 돌보지 않고,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고, 아내가 자신을 존경하며 의지하게 만들지 못하고, 동반자로서의 믿음조차 주지 못한다면, 여자가 힘들게 한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네) 평소처럼 말이 길어졌네요.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자, 60번이에요. 시바가 초조하게 기다려요. 『뭐지? 내 가르침도 아직 다 못 끝냈으면서 그녀는 온갖 외적인 것들, 외면의 일들을 말하네』 남편이 시바나 까비르 같을 때는 여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봤죠? (네) 인도의 남편들은 남자 역할을 잘 알아요. 그래서 아내들이 순종하며 감히 나서서 말하려 하지 않죠. 물론 아마도 요즘 아내들은 좀 더 신경질적일 거예요. TV를 많이 보니까요. TV 영화에는 대부분 까다로운 여자들이 나오죠.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대개는 그래요.
사람들 대부분이 미국 TV 방송을 즐겨 보는데 빠른 전개 때문이죠. 그래서 나도 좋아해요. 하지만 대개는 등장하는 여성이 상냥하지 않고 입이 거칠고 늘 말다툼을 벌이거나 성질을 부리는 여자예요. 그런 식으로 묘사하죠. 게다가 아름다운 사랑을 주제로 다룬다고 해도 여성이 소릴 지르고 소동을 피우는 장면도 몇 군데는 넣고요. 그렇죠? (네) 일부 프로그램에선 그래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담배를 피우며 실없는 소리를 하고요.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모든 여자가 다 그런 건 아니죠. 아주 나쁜 사례를 보여주는 건데, 그래야 사실적이기 때문이죠. 그저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고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거예요. 허나 십대 여성들에게는 아주 나쁜 본보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건을 집어던지는 그런 걸 괜찮다고 여길 테니까요. 그러니 안 좋죠. 미국인들이 약간만 바꾸면 좋겠어요. 적어도 반의 반 정도로요. 늘 여자를 까탈스럽게 묘사하지만 말고요.
됐어요. 봅시다. 60번이죠. 이번엔 그녀를 헌신의 여신, 삭티라고 부르네요. 『샥티여, 모든 공간이 그대 머리 속에, 밝음 속에 통합되어 있다고 보라』 이건 일종의 상상이군요. 그런데 『상상하라』고 안 하고 『보라』고 했어요. 『본다』는 건 만물이 자신과 하나가 된 걸 봤을 때를 뜻하고 바로 그때 내면의 밝음을 보게 된다는 말이죠. 당연하죠. 당연히 자신이 우주와 하나가 되면 내면 천국의 빛이 지닌 밝음 말고 무엇을 보겠어요? 그래요. 이해하기 쉽죠. 여기 가르침은 다 쉬워요. 히말라야 사람들이나 인도인들에겐 쉽겠죠. 정말 헌신적이고 순수한 이들 말고 다른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요.
61번, 『걷든지, 자든지, 꿈을 꾸든지, 자신이 빛임을 알라』 이건 이해하기 쉽죠? (네) 그래요. 알 수 있어요. 늘 집중하라는 뜻이죠. 기억나죠? 보다시피 스승이 가르치는 건 결국 집중하라는 거예요. 언제나 자신이 빛이며 음류이며 우주의 음악이자 근원의 소리임을 기억하세요. 자신이 빛임을 기억하세요. 절대 잊지 말고 이 육신이란 존재로 가라앉지 말아요. 그렇게 가라앉을 때 고통스럽게 되는 거죠. 늘 자신을 고양하고 인간이란 존재를 초월하고 육신을 초월하세요. 그럼 기분이 좋아져요. 적어도 심리적으로는요.
62번, 『어두운 밤 비가 내릴 때, 모든 형상의 형상으로서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라』 자, 이해가 되나요? 블랙홀일까요? 명상할 때 온통 어둠뿐일 때가 있죠? 허나 그 어둠은 살아있어요. 우리가 명상할 때 앞에 보이는 어둠은 살아 움직이죠. 맥동하는 것처럼 보여요. 때론 그 어둠 속에서 뭔가가 창조되죠. 그 어둠은 어둠이 아니에요. 창조의 고요함이며 창조의 밤이죠. 모든 게 그 어둠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 한동안 잠들어 있죠. 그러니 그런 어두운 밤엔 모든 것의 근원인 그 어둠으로 들어가 보세요. 그럼 각성한 기분이 들 거예요.
64번, 『뭔가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거기서 멈춰라』 이해하겠어요? 뭔가를 간절히 하고 싶을 때 멈추고 지켜보는 거예요. 이는 수행법 중 하나죠.
65번을 보죠. 『글자 없이 「옴」 소리에 집중하라』 『옴』은 AUM으로 되어 있지만 그 글자 사이에 집중하라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글자도 없고 어떤 물리적인 소리도 없는 상태가 되게 하고 그저 자신의 집중을 유지하라는 거죠. 어려운가요? 아니죠. 『옴』은 쉽잖아요? 옴, 옴, 옴, 옴, 옴. 이걸 다 해볼 필요는 없어요. 할 게 이미 충분히 많으니까요. 단지 참고만 하세요. 다른 수행법이나 가르침을 공부해보고 자신에게 맞는지 한번 보세요. 그러면 뭔가 알게 되겠죠. 적어도 내가 뭔가 안다는 걸 여러분이 알 수 있겠죠.
66번, 『「아」로 끝나는 단어를 조용히 읊어보라』 「아」요. 『그런 다음 저절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움을 보라』 아주 시적인 표현이네요. 이해하긴 어렵지만요. 시바가 뜻한 건 「아」로 끝나는 단어를 말할 때는 「아」로 끝나는 부분을 느껴보란 거죠. 이렇게… 숨쉬는 것처럼요. 그러곤 불성으로 들어가는 거죠. 자발성이나 자연성이라는 것은 같은 거죠. 불성 같은 거예요. 근원적인 힘을 달리 부르는 거죠.
67번, 『자신이 사방으로, 멀고 가까운 곳에 편재함을 느껴라』 이건 이해할 수 있겠죠. 느껴보도록 해요. 느껴지나요? 해봐요.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요. 너무 멀게는 말고요. 내가 얘기할 때 너무 멀리 가서 저기 정문까지 가 있으면 안 돼요. 어제처럼 줄의 맨 끝에 있어도 안 되고요. 여러분한텐 좋을지 몰라도 내겐 압박감을 주거든요.
사진: 『사랑은 정말 가까이 있어요. 정원 속에, 당신의 마음속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