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돕는 게 자신을 돕는 거라고 내가 자주 말했어요. 많은 세상 사람들이 이걸 모른다는 게 안타까워요. […] 자선과 사랑이 있어야만 다음 생에 자신을 불행에서 구할 수 있으니까요. 스승을 만나 한 생에 해탈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야 하죠. 그래야 한다면 고통이 적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다시 태어나는 게 좋겠죠. 가령 의식주나 다른 모든 생필품이 부족하지 않은 안락한 삶을 사는 거죠. […]
칸자니는 노파의 이름이에요. 『노파는 흑녹두 한 줌을 씻을 참이었다. 물에 불렸다가 음식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부슌디는 부리 한가득 흑녹두를 훔치려 했다』 […] 그래서 그릇으로 휙 날아가 번개처럼 쌀을 한가득 입에 넣었다! 하지만 경계하던 노파는 더 빠른 속도로 까마귀를 잡았고』 이렇게 목을 잡았어요. 『그의 목을 비틀었다』 저런요! 『계속 비틀면서 까마귀가 쌀을 삼키지 못하게 했다』 (오, 와) 세상에나! […] 『한편 노파는 다른 손으로 부리를 벌려서』 까마귀 부리요. 『억지로 빼냈다. 발버둥 치는 까마귀의 목에서 마지막 한 톨까지 끄집어냈다』 (으) 으 […] 정말 상이라도 줘야겠어요. 『세계 역사상 가장 지독한 구두쇠 상이요!』 이런 경우가 진짜 있나 모르겠어요. 있겠죠? 모르겠어요. 있을 수 있죠? (네) 어떤 이들은 경솔하고 오만하고 인색하고 어리석고 잔인하고 냉혹해요.
『카카부슌디 아난다 마하라자는 살려고 발버둥 쳤다. 마침내 노파는 녹두알을 모두 꺼냈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놔줬다. 기진맥진한 그는 비슈누 신에게 날아가 그의 발밑에 쓰러졌다. 비슈누 신은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부슌디는…』 아무렴 어때요. 그를 그냥 부슌디라 부릅시다. 그의 긴 성은 생략하죠. 『…숨을 헐떡거리며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보고했다. 「오, 신이시여! 오, 하느님. 맙소사! 목이 막혀 죽을 뻔했어요. 제 의무를 달성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노파가 너무나 지독해서 녹두 한 알도 훔쳐 오지 못했습니다」 비슈누 신은 말했다. 「오, 부슌디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 이리 오너라! 네 입을 검사해 보자꾸나. 입을 벌려라. 한번 보자」 그래서 부슌디는 이렇게 부리를 벌렸다. 그러자 비슈누 신은 돋보기를 대고 지혜안으로 그의 목을 찬찬히 살폈다. 그리곤 뭔가를 발견했다. 「아! 저기 뭔가 있구나! 이게 뭐지?」』
뭔지 한번 볼게요. 아직 모르겠군요. 뭔지 봅시다. 뭔가 분명 있을 겁니다. 영화처럼 이것도 이야기니까요. 뭔가 있을 거예요. 안 그럼 이야기가 전개될 수 없죠. 분명 뭔가 있을 겁니다. 지금 어디까지 했죠? 좋아요. 『그는 작은 낱알 껍질이』 낱알 껍질이죠? 외피? 껍질이요. 쌀이나 곡류의 껍질 같은 거죠. 『입천장에 붙어 있는 걸 봤다』 휴, 다행이군요! 적어도 그가 헛되이 시간 낭비한 건 아니네요. 『「봐라, 부슌디야! 입천장에 작은 낱알 껍질이 붙어 있단다. 이것으로 난 흡족하다」 비슈누 신이 말했다』 오! 비슈누 신은 정말 쉽게 만족하는군요. 우리가 진작 알았더라면 매일 이렇게 오랫동안 명상할 필요도 없었는데요. 지금 막 방석에 엉덩이를 올려놨다고 해도 괜찮다고 할 텐데요.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낫죠. 그는 낱알 껍질만 있어도 만족하니까요.
이제 『이 노파는 약간의 공덕을 얻게 되었다』 오! 자애롭고 사랑 넘치고 자비로운 비슈누 신께 축복이 있길! 『「부슌디야! 저 노파가 죽은 후 다시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녀는 네 입천장에 붙어 있던 곡식의 낱알 껍질로 평생 먹고 살 것이다」』 그 노파는 평생 그걸 먹게 될 거예요. 참 맛있겠군요! 『비슈누 신은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보시와 선행의 이로움은 이처럼 대단하고 놀랍다』 자발적인 게 아니어도요. 『또 비슈누 신은 이토록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흘러넘친다. 비록 미미한 자선 행위라도 믿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온다』 그 노파는 낱알 껍질이 쓸모없다고 생각해 마저 꺼내지 않았을 거예요. 별거 없다고요. 껍질은 줘버리자 했겠죠.
『그 결실이 자신에게 매달려 내생에 자신을 구할 것이다. 비슈누 신은 크나큰 사랑으로 죄 많은 인간에게 구원받고 성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인간은 신이 보내신 기회들을 붙잡아야 한다. 공덕을 짓는 게 뭔지도 몰랐던 노파도 낱알 껍질로 빵을 얻게 되었는데 하물며 빈자들을 먹이고 헐벗은 이들에게 옷을 입히고 남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슬픈 이들을 위로하는 수많은 공덕을 짓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알겠어요? (네) 이 노파는 공덕이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낱알 껍질 하나로 평생 먹을 빵을 얻을 수 있었죠. 적어도 많은 걸 얻었어요. 그러니 우리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베푼다면 얼마나 더 많은 걸 얻겠어요? 이게 결론입니다. 그런 의미예요. 네. 됐어요. 더 얘기할 필요 없죠. 모두 이미 알고 있죠.
남을 돕는 게 자신을 돕는 거라고 내가 자주 말했어요. 많은 세상 사람들이 이걸 모른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래서 지난 며칠, 설날에 이 나라와 세상 사람들에게 고귀한 자선의 행위를 상기시키고자 우린 시상식을 열었어요. 자선과 사랑이 있어야만 다음 생에 자신을 불행에서 구할 수 있으니까요. 스승을 만나 한 생에 해탈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야 하죠. 그래야 한다면 고통이 적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다시 태어나는 게 좋겠죠. 가령 의식주나 다른 모든 생필품이 부족하지 않은 안락한 삶을 사는 거죠.
그래서 난 사람들에게 자선을 행하라고 권해요. 내가 남을 돕는 데 그들의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녜요. 그들 자신이 그걸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그들이 다음 생에 또다시 이런 안락한 삶을 누릴 공덕이 있을지 결코 알 수 없으니까요. 가령 지금 대만(포모사)에서의 삶처럼요. 그러니 선행의 씨앗을 계속 뿌리는 게 좋습니다. 만일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요. 스승을 만난다면 선행을 하든 하지 않든 계속 명상을 하는 한 스스로 해탈하기에 충분한 공덕을 갖게 될 겁니다. 우린 다시 올 필요가 없죠. 좋은 삶이든 나쁜 삶이든요. 그러니 문제없어요! 알겠어요? 끝이에요. 됐나요? (아뇨) 『아니』라니 뭔 말이죠? 『아니』라고 할 땐 『어쩌면』이란 뜻이죠?
네, 다음은 뭔지 봅시다.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넘어갑시다. 이건 마음에서 우러난 숭배에 관한 이야기예요. 우린 보시가 공덕이 많다고 했어요. 그럼 명상과 기도는 어떨까요? 보시 대신 마음으로 신을 숭배한다면 어떨까요? 혹은 자선도 같이 행하고요. 마음으로 숭배한다는 건 신자, 추종자를 뜻해요. 꽃, 향, 북, 징, 조각상, 음식 같은 외적인 물질로써 신을 숭배하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 아르주나를 기억하나요?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크리슈나의 제자요. 여러분도 알죠? 『아르주나는 겉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배를 오래 올리는 걸 좋아했다. 많은 등을 밝힌 예배방도 있었다. 그는 금은 접시에 음식을 차려 놓고 시바 신께 몇 시간씩 예배를 드렸다. 몇 수레의 꽃을 바치고 오래 앉아 있기도 했다』 그 당시엔 자동차나 버스 대신 수레였죠. 『신상 앞에다 꽃을 바쳤다』 시바 신 알아요? (네) 그래요? 브라마, 비슈누, 시바. 힌두 신 가운데 한 분이죠. 시바는 파괴의 신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사실 그는 악만 파괴할 뿐 선량한 이들은 해치지 않아요. 선량한 존재들은 해치지 않고 악만 파괴합니다.
좋아요. 자. 『아르주나에겐 비마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예배도 안 드리고 사원에도 가지 않았다』 늘 미야오리에만 갔죠. 『그는 식사하기 전에 그저 눈을 감고 몇 분간 마음속으로 시바 신에게 경배를 올리곤 했다』 여러분이 하듯이 했겠죠. 나도 알아요. 매번 여러분은 식사하기 전에 이러잖아요. 난 여러분이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때론 뒷사람이 여러분이 이럴 때 음식을 가져갑니다. 그가 음식을 가져가도 여러분은 모르죠. 『그는 식사하기 전에 눈을 감고 몇 분간 마음속으로 시바 신에게 경배를 올렸다』 아마 공양을 올렸거나 신성한 다섯 명호를 외우거나 했을 겁니다.
『아르주나는 자신은 시바 신께 아주 신실하고 헌신적인데 동생 비마는 전혀 신심이 없다고 생각해 동생을 업신여겼다. 크리슈나 신은 아르주나의 이런 태도를 알고는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도록 일깨워주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아르주나에게 시바 신의 신전이 있는 카일라시산에 가자 했다』 카일라시산이 어딘지 알아요? 나도 몰라요. 티베트나 히말라야에 있다고 들었어요. 가장 신성한 산 중 하나예요. 인도 사람들뿐 아니라 티베트 사람들과 불교 신자들, 힌두교 신자들도 종종 카일라시산으로 순례를 갑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주아주 위험하고 따라가기가 아주 어렵죠. 상점 같은 것도 없어요. 식량도 가져가야 하고 침낭과 텐트도 가져가야 하죠. 그 날씨에 살아남을 수 있다면 돌아올 수 있지만 안 그러면 그냥 가는 거죠. 그대로 떠나는 거예요.
『아르주나는 의심 없이 기꺼이 스리 크리슈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둘은 여행을 시작했다』 참 좋은 스승이군요! 제자를 가르치려면 그와 함께 길을 가면서 역경도 같이 겪어야 하죠. 아르주나가 생생한 본보기를 통해 실제적이고 훌륭한 교훈을 얻도록요. 정말 좋은 스승이에요! 나였다면 이랬을 거예요. 『당신 혼자 가요. 난 여기서 기도할게요. 내면의 스승에게 당신을 보호해달라고 할게요』 옛날엔 등급이 어떻든 스승들이 많은 제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통신과 교통 문제 때문에 제자를 많이 둘 수 없었을 거예요. 게다가 제자로 받아들이기 훨씬 전부터 그들을 시험하거나 그랬어요. 또 오늘날처럼 대규모로 뭔가를 조직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오늘날조차도 모든 스승이 제자를 많이 둘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네) 혹은 어느 시대든요. 예를 들어 우리가 대중강연회를 열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오죠. 근데 몇 백 명만 남아요. 그다음에는 더 적어지죠. 계속 남아 수행하는 사람 수는 더 적어요. 그렇죠? 무엇이든 그들이 떠나도록 유혹할 수 있죠. 동물주민 고기, 여자, 돈, 가족의 영향, 친구, 사회, 그 어떤 것이든요! 그들은 오랜 습관 때문에 다시 끌려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