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하여
누가 그분께 물었습니다: 케차, 고통은 무언가요?
그분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진정한 고통은 자신에 관해 알지 못하지만 거기 있음을 아는 것이다. 육체의 고통은 영의 위안이다. 그것은 배출된 똥과 같으니, 이것이 병이다. 생명의 법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벌이라고 생각하여 고통과 싸우려고 한다.
현자는 그걸 받아들이며, 그렇게 더 멀리 간다. 기록된 것은 기록된 대로이지만, 기록되고 있는 것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고통을 생각 말고, 고통이 내일 너에게 가져올 영광을 생각하라. 오늘의 영광을 생각 말고, 영광이 내일 너에게 가져올 고통을 생각하라. 언제나 「지금」이 되라. 시간의 모래밭에선 한 걸음도 되돌릴 수 없다.
『고통은 사랑의 기본 법칙의 결과로 생긴다. 그러니 중도에 머물면서 이 생명의 차원에서 고통을 통해 얻은 성장에 감사하자』
마음을 깨끗이 하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그들이 그분께 말했습니다: 석양이 무엇을 가르치고, 아침은 어떻게 가르치며, 어떤 상황이 어떻게 지식을 가져다주는지 알 수 있나요?
그러자 그분이 답했습니다: 네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너 자신의 거울이다. 고뇌의 구름이 네 마음의 지평을 채우면 모든 이의 마음에서 고뇌의 구름을 볼 것이다. 네 가슴 한가운데 평온이 자리하면 누구나 그 가슴에 평온을 품고 있음을 알 것이다.
네 머리속이 미움, 원한, 질투의 생각이 숨어있는 소굴이라면, 삶의 거리와 광장을 걸을 때 미움이 지나가고, 벤치에 원한이 앉아있고, 구석마다 질투가 앉아있는 걸 볼 것이다.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염된 이 도시 너머로 날아가고 싶다. 이 집을 떠나서 깨끗한 들과 그 순수함을 느끼고 싶다! 나는 네게 말한다. 네 생각을 깨끗이 하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네 가슴을 깨끗이 하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네 몸을 깨끗이 하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무지한 자는 바깥의 더러움은 보면서 자기 더러움은 보지 못하니 이렇게 말한다: 제단이 더럽고 빛이 흐리므로 나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 내 사원을 정결히 하리라. 무지한 자는 남의 사원에서 자기 사원을 깨끗이 하려 하고, 존재의 매일 밤낮에 악은 자기 외부에 있고 제 마음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흉내지빠귀와 참새를 보라. 누가 그들의 노래가 조화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버드나무와 참나무, 낙우송을 보라. 누가 그 성장이 조화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에 대하여 어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남을 비판하는 것이 큰 소리로 자기를 비판하는 것임을 안다면, 비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깨우친 것인가!
모든 것은 제 자리가 있고 각자의 길이 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만이 끝까지 남의 길을 따라가다가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자신의 길을 찾은 날은 복 되니, 그날에 그는 거듭나리라! 그 순간부터 석양과 산, 꽃이 그에게 뭔가 말할 것이다. 그는 자연과 함께 걷기 시작하고, 그의 언어는 작은 새와 같아지고, 그의 손은 강과 같으며, 그의 눈은 삶에서 보는 생명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남의 상황을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자신을 비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을 돕는 것은 자신을 돕는 것이다』
주고받는 것에 대하여
지구의 숨결에서 태어난 세월을 장식하는 나날 중 어느 날, 우리는 케찰코아틀과 함께 툴라의 들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고요했습니다. 함께 가는 그분에게 나온 고요함 때문이었지요.
우리가 주고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 거지가 다가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형제여! 오늘 이 가련한 몸이 음식을 먹게 해 주십시오. 이 몸은 많은 낮과 밤을 먹지 못했습니다. 무언가를 주시면 제가 대사원 앞에서 천국이 당신을 보호하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형제여, 내가 뭔가 준다면 내가 주는 것은 지구의 땀과 당신의 일하는 손에서 나온 것이니, 나는 단지 운반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옥수수는 열매만이 아니고 시간과 태양의 의지와 결합한 흙과 물입니다. 바람도 그것을 익어가도록 도왔지요.
이런 식으로 당신의 양식을 위해 그것을 제물로 바칠 때, 당신은 그것의 모든 진화와 자신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이나 생명이 그들에게 준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그들이 자신을 해치는 걸 멈춥니다.
내가 당신에게 준다면 천국의 뜻을 이룰 뿐이죠. 당신에게 속한 것을 나를 위해 가진다면 내가 당신보다 그것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며,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더라도 내게 준 사람은 당신입니다. 드세요, 육신은 토르티아를 먹고, 영은 이 말을 먹으며, 당신도 나눔을 깨닫겠지요.
우리를 향해 그분이 말하길: 줄 사람이 없다면 주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라. 받는 사람이 어쩌면 항상 주는 사람이 아닐까?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은 겸손이다. 오늘날 소유한 모든 것을 언젠간 주어야 한다. 신이 우리에게 주심은 우리도 주고 그분처럼 되라는 것이다. 우리의 몸도 우리 것이 아니다. 신께서 이 몸을 관리하라고 우리에게 주셨을 뿐이다』
온 우주
나는 내 마음을 위한 찬가와 나의 발걸음을 위한 길만을 원한다. 나는 내 영혼을 위한 비상과 목소리만을 원한다. 나는 급류에서 추진력을 받았다. 나는 독수리에게서 그 판단을 받았다. 나는 순간을 흐리게 하는 상황이나 나날을 이루고 존재의 세월을 이루는 상황들을 넘어 올라가는 걸 배웠다.
나는 길가에 있는 풀에서도 고통을 배웠다. 바람은 나를 어디에나 데려갔다. 나는 이곳저곳을 가더라도 여전히 어디에나 있다. 갇힌 황금방울새에게 나는 고통받으면서도 노래하는 법을 배웠고, 후이코틀에게 자유를 얻기 위하여 자유를 잊는 법을 배웠다.
나는 벌새에게서 작은 것의 쓸모를 알았고, 참새에게서 평범한 것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나는 나무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초연함의 찬가를 배웠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나는 양극의 투쟁을 보았다. 나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모든 우주와 우주 너머를 보았다.
나는 나무에서 은자의 침묵의 위대한 본보기를 구하려고 뿌리로 내려갔다. 그 후에 내 이마는 별들로 가득 차 있었고, 팔은 성운이었고, 가슴은 태양의 태양임을 보았으며, 입에서 나온 것은 모든 우주에서 존재로 가는 찬가였다. 내가 입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탄생함을 보았다.
나는 눈을 뜨고 밖에서 모든 것을 채우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나는 내 가슴을 위한 하나의 찬가, 내 발걸음을 위한 하나의 길을 취했다. 이 찬가는 모든 찬가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 길은 봄을 위한 그 작은 비행에서 태양을 뒤쫓는 장미부터 별들의 태양을 따라가는 별들까지 찾는 모든 길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열반, 다른 이는 꽃의 정수, 많은 이는 신성한 어머니, 신, 사랑의 바다라 부른다. 그러나 신이 네 눈을 통해 볼 때 우리는 자신이 신이라는 걸 깨닫는다』